"이건 마치 내 이야기 같아."
확신은 자신을 성립하고 확인하는 과정 중 하나에요. 의심은 확신의 바로 전 단계죠. 사실 의심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추측, 기대 등과 다른 뜻을 가지지 않아요. 사소한 몇 가지의 단서, 그리고 이미지들은 이런 의혹을 확신으로 바꿔놓죠. 일단 확신이라는 레일에 올려지면 그걸 멈추기는 쉽지 않아요. 모든 상황이 자신이 믿고 있는 그것에 맞춰서 돌아가니까요. (멋대로 해석해 버리는거죠) 아,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 진실과는 상관없어요. 스스로가 그렇게 믿는다는게 중요하니까. 믿음에 대한 확신. 그건 나 자신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죠. 한 사람의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은 그가 지금껏 살아온 생에 대한 요약본이자 메뉴얼이거든요. 그게 깨지는 순간 자기도 깨지는거죠. <살인의 추억>을 기억하나요? 귀신눈깔이 서울서 온 과학수사에 밀리던 순간 박두만이 느꼈던 초조함을. 얼추 비슷해요.

믿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성직자들에게는 특히 이런 신념과 확신이 큰 의미가 있겠죠. 하지만 때론 그들도 흔들린답니다. 왜, 테레사 수녀도 끝까지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고 하지 않아요? 흔들리는 신념을 다잡기 위해서는 더 강한 믿음이 필요하겠죠.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도 아마 그런 경우일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원칙적이고 엄격하죠. 자신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인물이기에 한번 물면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고 상대가 숨을 멎을때까지 놓지를 않아요. 그녀에게는 그것이 정의니까요.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는 어려요. 그리고 아직 인간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인물이죠. 몇 가지 의심가는 상황을 두고서도 '설마 신부님이'라고 생각해요. 순진한(?)제임스 수녀에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이렇게 압박하죠. '넌 아직 세상을 잘 몰라. 내 눈은 못 속여!'. 플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신부는 어떨까요.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한 확신에 맞서는 인물이에요.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되니 그만. 어쨌든 알로이시스 수녀는 그녀 자신을 지켜내죠. 마지막에 믿음을 먹고 사는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긴 하지만.(스스로의 믿음을 위해 진실을 비틀어버렸을 수도 있거든요.)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진실이 무엇이냐를 규명하는 일은 참 쓸데 없는 것 같군요.           
      
영화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다우트>는 정직해요. 감독은 의도를 숨기지 않죠. 비틀어 버린 화면, 불안한 부감 샷. 마치 "긴장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아마도 배우들이 형편없었다면 굉장히 촌스러웠을 수도 있을텐데, 감독은 배우들을 매우 신뢰했나봐요. 그도 그럴 것이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인데 어떤 양념이 더 필요하겠어요. 음, 이건 비유하자면 A++급 한우를 육사시미로 먹는 맛이랄까.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이야기죠. 아주 정직하게 좋은 고기를 정성스럽게 손질해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되는거에요. 하하. <다우트>로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남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도 됐으니 말 다하거죠 뭐.

또 하나, 배우들이 훌륭한 덕분인지 유난히 롱테이크 씬이 많아요. (연극이 원작인 탓도 있죠.) 특히 기억이 나는 건 메릴 스트립과 바이올라 데이비스 그리고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불꽃 튀는 감정 대결이에요. 첫 번째는 야외여서 긴장감이 좀 덜 할 수도 있는데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5분도 채 안되는 저 장면 때문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군요. 두 번째. 실내를 배경으로 한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대결은 '진짜'에요. 유쾌하고 가볍던 플린 신부의 불안감이 폭발하는 대목인데, 아 '고수들의 진검승부란 이런거구나' 딱 이 느낌이에요. 연기 교본으로 써도 되겠더군요. 난 연기하는 메릴 스트립을 직접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출연하는 연극은 브로드웨이로 날아가서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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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l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