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07 욕심도 포부도 없지만 멋지다 (3)
  2. 2008.12.02 주말에 할 일 (3)


우선 단편이 장편에 비해 가지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단편은 짧은 만큼 서사를 전달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서사 위주보다는 장면 위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단편은 사진과 비슷하다.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면 감정이입이 힘들다. 상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길수록 관객이 개입할 여지는 많아진다. 상상을 한다는 것은 집중하고 몰입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장편이 이놈은 이래서 그런 행동을 하고 저놈은 이놈과 요런 관계이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면, 단편은 앞 뒤 이야기를 다 잘라버리고 어느 한 순간을 들어내 그대로 관객 앞에 보여준다. 그러면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오감을 동원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단편은 장편에 비해 강렬하다. 관객의 감정이 들어갈 부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편이 남의 이야기라면 단편은 내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다.

 

김종관의 11편의 단편모음 <연인들> 중 단연 발군은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다. 짝사랑 혹은 동경에 대한 두근거림을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있을까? 앞선 포스팅에서 장면 하나하나가 다 기억난다고 했는데,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 한 느낌으로 봤다. 사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주는 강렬한 느낌은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정유미가 5할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흔들리는 눈동자. 바싹 마른 입술. 어쩔 줄 모르는 두 손. 나머지는 김종관 표 연출과 시놉이다.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무심한 말투. (심지어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너 내 이야기는 듣고 있니?’) 인물 표정을 따라가고 그 대상을 감추는 방식은 <폴라로이드 작동법> 이후 4 <헤이 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헤이 톰>의 장치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 비해 좀 더 복잡하다. 친구가 이야기하는 친구 남자친구가 낯설지 않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결론은 없다. 이번에는 아주 잠깐이지만 남자의 얼굴이 등장한다.(사실 이 부분에서 매니지먼트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배우를 썼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얼굴을 보여야 했단 말이다.) <헤이 톰> <폴라로이드 필름>에 비해 강렬하지 않지만, 대화가 찰지다. 대화 속에 인물에 대한 가이드가 있다. 이것이 김종관이 말하는 성장이라면 인정해주고 싶다.

 

심각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인 <올 가을의 트랜드>는 앞선 두 영화와는 다르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왜 첫 데이트를 하게 됐는지 시시콜콜하게 나레이션으로 설명해준다. 대화는 아주 약하게 들릴 뿐 중심은 화면과 나레이션이다. 이런 방식은 이번에 상영된 <모놀로그 #1>, <영재를 기다리며> 등에서도 유효하다. 김종관은 단편이라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아예 그림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통으로 들려주거나 하는 식으로 서로 반대(?)지점에 있는 두 방식을 왔다갔다한다. 혹자는 영화에서 나레이션은 쓰레기다라고 말하는데, 김종관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소통을 통해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춰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느낌은 이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없다.                              

 

김종관은 비교적 긴 편에 속하는 <낙원>에 와서는 아예 대화 하나 없이 14분을 이끌어 간다. 물론 등장하는 남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다. 비 오는 밤 하룻밤을 같이 지낸 여자를 뒤쫓는 남자. 남자는 절름발이이고 여자는 진한 화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었다. 여자의 뒤를 따라가지만 남자에게 서글픈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는 버스를 타고 떠나고개인적으로는 <연인들>에서 이미 봤던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빼고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이었다.      

 

김종관은 영화의 성장속도가 내 성장속도와 비슷하다. 그래도 꾸준히 작업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단편의 흐름 속에서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포부도 욕심도 생략됐지만 그래서 더 멋진 말이다. 그는 현재 <바닷가에서>라는 장편을 준비 중이다. 단편에서 멋진 그림을 보여준 감독이 장편에서도 멋진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까? 앞서 단편이 장편에 비해 가지는 장점에 대해 조금 이야기 했는데, 그걸 역으로 말하자면 핸디캡을 가진 장편에서 몰입을 이끌어내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렵다. 어쨌든 김종관 감독이 자신의 말대로 더디지만 꾸준히 갔으면 한다. 남은 삶이 많은 만큼, 계속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덧붙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아마도 매우 섬세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여성의 시점에서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남자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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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lth

주말에 할 일

쓰고 2008.12.02 10:43


김종관의 단편이 11개나 엮어서 상영된다는 기쁜 소식. 난 예전에 <폴라로이드 작동법>만 봤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에 싹 봐야겠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너무 인상 깊어서 장면 하나하나가 다 생각이나. 잊지말고 이번 주말에 꼭 가자! 

아래는 인디스페이스 긁음

이번 김종관 단편콜렉션 <연인들> 개봉을 통해 선보이게 될 영화는 그에게 처음으로 ‘독립영화계의 스타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줬음은 물론, ‘정유미’(<사랑니>,<케세라세라> 출연)라는 독특한 여배우의 존재를 발견하게 해준 최고의 화제작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을 비롯하여, (2002), <영재를 기다리며>(2005), <낙원>(2005), <누구나 외로운 계절>(2006), <모놀로그#1>(2006), <드라이버>(2007), <길 잃은 시간>(2007), <메모리즈>(2008), <헤이 톰>(2008), <올 가을의 트렌드>(2008) 등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수의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화제를 뿌렸던 초기작에서부터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가장 최신작까지, 오직 김종관표 단편영화 총 11편이다. 

장편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닌, 영화제용 단편영화가 아닌, 오직 단편영화만의 매력과 감수성으로 꾸준히 자기 호흡을 지켜 온 김종관 감독! 이번 김종관 단편콜렉션 <연인들>의 개봉은 관객들에게 ‘김종관’이라는 한 감독의 성장 과정을 한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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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lth